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따뜻한 플랫폼을 기대하며

입력
2022.01.25 19:00
25면
0 0
박희준
박희준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펴보고, 플랫폼 기반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본다.

스크린골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크린골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9년 일본 도쿄에서 당대 세계 최고의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와 레슬링 선수 안토니오 이노키 간에 세기의 대결이 벌어진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3분 3라운드의 경기는 싱겁게 끝나버린다. 경기 전날까지 경기 규칙을 정하지 못해 알리는 복싱 규칙으로 이노키는 레슬링 규칙으로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이노키는 바닥에 드러누워 발로 공격을 시도하고, 알리는 이노키의 발 공격을 피하면서 선 채로 누워 있는 이노키에게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유효 가격은 한 번도 주고받지 못한다. 두 선수는 엄청난 대전료를 받고 링에 올랐지만 경기 내용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르고 이종격투기 시장이 열린다.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다양한 격투기 선수들이 하나의 규칙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이종 간의 융복합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스크린골프도 또 다른 이종 간 융복합 사례다. 필드 골프와 컴퓨터 게임의 융복합으로 만들어진 시장이다. 스크린 골프가 시장에 소개되기 이전에 한국 골프 인구는 감소세에 있었다. 골프 시장에 유입되는 젊은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프가 아니라도 즐길 것이 많은데 굳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드는 골프를 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 골프가 소개되고 젊은이들은 일과 후에 친구 동료들과 어울려 돈도 많이 들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스크린 골프를 즐기기 시작한다. 스크린 골프 시장이 열리고 2년 후부터 한국 골프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스크린 골프 시장에 유입된 젊은 인구가 필드 골프 시장으로 유입된 것이다. 스크린 골프 시장이 열릴 때 필드 골프 시장은 고객을 빼앗길까봐 긴장했지만 오히려 스크린 골프 시장과 함께 성장해 가고 있다.

이종격투기도 스크린 골프도 이종 간의 융복합으로 만들어진 서비스 시장이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이종격투기 시장이 열리면서 복싱과 레슬링 시장은 위축되었지만 스크린 골프 시장이 열리면서 필드 골프 시장과 비디오 게임 시장은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최근 공급자들은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듈 간의 다양한 조합을 실험하면서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기존 시장의 사업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우리다. 이종 간의 융복합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시장이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게 된다면 기존 시장의 견제와 그 견제로 만들어진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기존 시장의 사업자들에게 출구전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새로운 시장에서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또한 플랫폼으로 구동되는 새로운 시장 내에서도 플랫폼 사업자와 참여자들 간의 상생 노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모순적이지만, 목표 지향적이고 이기적인 플랫폼 참여자들의 욕심에 기반을 둔 상호 견제를 통해 플랫폼상의 계약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한편, 플랫폼 사업자 중심의 조정 기능은 오히려 담합으로 변질될 수 있으며 또 다른 부정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시장이 원하는 경우의 수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거래를 공정하고 생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술로 블록체인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완전체로 진화해갈 것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