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엄마가 퇴근하면 우는 아들...아들이 절 싫어해요

입력
2022.07.18 04:30
24면
0 0

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기자

일러스트=박구원기자

저는 남편, 아들과 함께 사는 40대 직장인입니다. 생활력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이 제가 집에 들어가기면 하면 울면서 저를 거부합니다. 엄마로서 너무 서운하고 무력감이 듭니다.

남편과는 오랜 친구 사이로 지내다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원했지만 남편은 신혼여행 첫날 밤부터 부부관계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결혼 후 2년 동안 기다리면서, 설득도 해보고 화도 냈지만 개선이 없었어요. 결국 의술의 힘을 빌려서 임신 시도를 했고, 운 좋게 인공수정 첫 시도에 생명을 얻게 됐어요. 첫아이 출산 후 둘째 임신을 간절히 원했지만 남편은 키울 자신이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결혼 초부터 삐걱거렸던 남편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갔습니다. 대신 저는 유일한 자녀인, 아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었죠. 아들은 저의 신앙이자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남편은 작은 전자기기 매장을 십 수년 다닐 정도로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지만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이후 매장을 직접 차렸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죠. 결혼 전 학원강사로 근무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아이가 백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부터 과외 강습을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육아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생활력을 믿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게 됐죠.

아이는 시어머니가 출퇴근하시며 돌봐주셨습니다. 아이가 돌이 되고 입소문이 나면서 학원을 개원하게 됐어요. 아이를 위해 더욱 일에 매달렸습니다.

아이가 네 살이 지나던 해 남편이 갑작스럽게 뇌종양 판정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서서히 진행된 병이었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부부관계가 다시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면서 저는 더 억척스러워졌습니다. 결혼 이후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잠을 세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요.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과 대화 단절, 저와 전혀 다른 육아관을 가진 시어머니와의 갈등, 의지할 데 없이 내가 뭐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공항 발작까지 겪었죠.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곁에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6남매를 혼자 키워내신 어머니의 희생으로, 가난했지만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를 7년간 자매들이 간병하던 동안 사이가 틀어지며 장례 이후 완전 남남이 됐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힘겨움을 나눌 사람이 없는 처지가 더 비참했습니다.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아이를 봐주시는 시어머니와 스마트폰 때문에 갈등이 폭발했죠. 시어머니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부분을 배운다고 휴대폰을 허용했고, 저는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 생각해 뺏는 식으로 대립했습니다. 아이는 스마트폰에 빠져들었고 엄마가 그런 행동을 싫어한다는 걸 인지하면서부터 제가 없는 시간에만 스마트폰을 보고 퇴근한 저에게는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안 돼"라고 하는 엄마를 불편해했고 몰래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할머니와 아빠를 더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제가 집에 가면 울면서 거부합니다. 시어머니는 우는 아이 뒤에서 그 상황을 재미있어하면서 큰 소리로 웃고 계시죠.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남편 탓인 것 같아 남편에 대한 분노는 더 쌓여갔습니다. 아니, 그런 남편을 선택한 게 저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듭니다.

하루 종일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퇴근해서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지만 차마 집에 일찍 갈 수가 없습니다. 그냥 어린아이 마음이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다가도 서운한 감정이 생깁니다. 며칠간 아이 눈에 제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가 저를 찾게 될까요. 저를 거부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소라(가명·44·학원장)

자식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모든 부모는 괴롭습니다. 나의 전부인 아이가 나를 거부할 때 엄마로서는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힘들지요. 일단 왜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같이 짚어보도록 하죠. 아이의 표현 뒤에 있는 진짜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야 아이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잘 대하고 다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잘 성장시킬 수 있겠지요.

일단 이 아이에겐 익숙해진 루틴의 패턴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늘 같은 길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만약 그 길이 공사 중이어서 옆길로 가야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큰 차이가 없지만 변화 자체가 불편한 겁니다. 불편하다 못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는 소라씨의 부재 속에서 돌아가는 생활 루틴에 익숙해져 있는데 소라씨가 어쩌다 일찍 들어오면 익숙한 틀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엄마가 특별히 싫은 것이 아니라 그 변화된 상황 자체가 불편해 울음으로 표현하는 거지요. 소라씨는 아이가 엄마를 거부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이의 진짜 이유는 익숙한 예전의 패턴을 고수하는 것으로 자기 마음의 안정감을 되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특성이 있는 아이라도 엄마와 관계가 친밀하고 같이 경험한 즐거움이 많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경우 소라씨와 보낸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부족했기 때문에 유대감이 단단하지 않은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엄마와의 단단한 유대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익숙함을 고수하는 아이의 성향이 엄마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소라씨의 휴대폰 규제에 대한 아이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휴대폰 시청을 규제하는 건 정당하고 가정 교육상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쩌다 한 번 찾아 와서 규제를 하니 아이 입장에선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양육과 관련해 시어머니와 남편, 엄마가 모여서 의논을 했으면 좋겠어요. 양육에서 일관된 원칙이 가장 중요합니다. 양육자 간 원칙이 없어서 아이를 헷갈리게 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지요.

이제 소라씨의 내면을 이해해 봅시다. 소라씨는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소라씨는 심지어 사랑도 책임을 완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에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이 ‘나답다'고 생각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여깁니다.

반면 남편은 착한 사람이지만 소라씨 기준에서 보면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라씨 입장에서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 서운하고 화가 날 겁니다. 양육 문제와 함께 이런 어려움에 직면하니 그 마음이 커졌을 거예요.

남편 입장에서는 불성실해서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아이를 돌보면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내의 원망에 섭섭하고 억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착하다고 상처를 안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의도와는 다르게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라씨는 남편과 달리 스스로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즉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나중에는 아이와 가족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는 억울한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더라도 아이에게 이런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면 의도치 않게 아이의 마음을 규정해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먼저 아이가 왜 엄마를 거부하고 어떤 상황이 불편한 것인지 인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적절한 통제와 규제가 필요합니다. 다만 왜 규제를 하고, 너무 많이 하면 안 되는지를 혼내고 화내는 것이 아니라 말로 잘 설명해줘야 합니다.

아이에게 충고와 조언을 하려고 할 때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연결하는 마음의 다리가 사랑과 믿음으로 단단하게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현재 소라씨와 아이의 마음의 다리는 단단해 보이지는 않아요. 그러나 소라씨가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뜨거운 진심이기에 깊고 따뜻한 애정이 바탕이 돼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일단은 아이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같이 보내는 시간 동안 사랑도 많이 표현하고 일상의 대화도 많이 하고 즐거운 추억도 많이 쌓으세요. 필요한 규제도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는 걸 많이 표현해 주세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주변 관계를 소라씨가 주도적으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아이의 교육과 양육에 있어 소라씨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알리고, 이 시간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남편에게도 책임을 나눠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이는 처음에는 왜 일찍 들어오냐고 불평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루틴에 적응하게 될 거예요. 소라씨가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아이는 금방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겁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oh-counseling)에서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정리= 손효숙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