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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피격 사망… 종교와 결탁한 현대정치 민낯 드러나다

입력
2022.07.23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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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일본 정치와 종교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기획물입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은 종교와 결탁한 일본 현대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종교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 한국 정치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은 종교와 결탁한 일본 현대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종교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 한국 정치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아베 전 총리의 암살에 대한 일본 시민 사회의 반응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정치적인 입장과는 별개로 그의 불행한 죽음을 애석해하는 일본 시민이 많다. 최장수 총리로서 미디어 노출도 많았던 만큼 친근감도 있지만, 그가 시민과의 접점에서도 부드럽고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한때 총리 관저를 출입했던 저널리스트 지인에 따르면, 노골적으로 매체의 영향력을 따지고 차별하는 대다수 유명 인사들과는 달리, 그는 지역 언론이나 작은 전문지 기자의 질문에도 성의껏 답변하는 의외의 소탈함을 보이곤 했다. 정치적인 지향은 맞지 않아도 ‘친구로서는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치인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평판이 썩 좋지 않지만, 그가 일본에서는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은 정치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의 갑작스럽고 불행한 죽음에 대해 일본인 친구들의 반응은 놀라움 반, 걱정 반이다. 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거물 정치인이 대낮의 유세 현장에서 총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지만, 총기 소지가 금지된 일본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현실감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내 주변에는 일본 사회의 우파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죽음이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반응도 많다. 아베 전 총리는 지금의 ‘평화 헌법’을 개정해, 일본은 전쟁이 수행 가능한 ‘정상적인’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왔다. 이번 사건이 그를 영웅화하고 개헌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 의식을 표명하는 지식인도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정치판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종교 세력

한편, 범행 직후에 체포된 암살범은 특정 종교 단체와 관련된 불행한 가족사가 직접적인 범행 동기였다고 진술했다. 아베 전 총리가 이 종교 단체의 행사에 보낸 축전 동영상을 보고, 그를 해치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 종교 단체와 인연이 있는 유명인을 암살함으로써 이 종교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킬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소위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온 가족의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일본에서도 종교 단체의 권유로 ‘영험한’ 도자기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든가, 병을 치유하는 신통한 음용수를 옆에 끼고 산다는 등 비상식적인 미신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저 개인이나 가족에 관련된 사적인 사안으로 치부되던 종교 문제가 일본 정치판을 통째로 뒤흔드는 큰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사실 일본의 정계에 종교 세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표적으로, 집권당인 자민당(自民党)과 수십 년 동안 연립 정권을 꾸려 오고 있는 공명당(公明党)의 존재를 들 수 있다. 이 정당은 불교 계열의 종교법인 창가학회(創価学会)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일본의 헌법은 정교 분리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공명당도 창가학회 간부의 의원 겸직을 금지하고 당의 강령에서 종교적인 용어를 배제하는 등 형식적으로는 종교 단체와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 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창가학회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공명당은 중도를 표방한 정치 세력으로서 존재감도 큰 편이다. 자민당에 선택적으로 협력하는 연립 파트너로서 주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며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 왔다. 지금은 집권당인 자민당,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 뒤이어, 안정적으로 지지율을 확보하는 제3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집권당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급격한 개혁을 원치 않는, 온건한 보수파 성향의 시민들이 이 정당을 지지한다. 공명당의 지지자가 모두 창가학회와 인연을 맺은 신자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창가학회라는 종교 단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망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으로 중립을 표명해 왔던 많은 수의 유력 정치인들이 실은 특정 종교 단체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수의 자민당 의원뿐 아니라 일부 야당 소속 의원들도 이 종교 단체로부터 정치 헌금을 받았고, 또, 이 종교 단체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의원들이 하나같이 내각의 중책을 맡았다. 아베 전 총리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거물이었기 때문에 종교 행사에 보낸 축전 동영상이 주목받았을 뿐, 실은 많은 정치인들이 특정 종교 단체와 밀월 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일본 시민 사회는 특정 종교 세력이 정치가와 내통함으로써 물밑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사실을 작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떻게 보자면 암살범의 의도대로 이 종교 단체와 관련한 문제에 비로소 일본 사회가 주목하는 모양이 되었다.

◇종교의 정치세력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 칼럼에서 사후 세계나 영적 존재를 폭넓게 긍정하는 일본의 독특한 종교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특정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은 적지만 매사에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 일본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특유의 문화가 종교의 정치세력화를 부추기는 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일본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오래된 종교 제도인 신도(神道)는 일본 우익 세력의 사상적 버팀목이다.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토속적인 신앙이 동시대의 정치판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전근대적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삶과 초현실적인 존재를 구분하지 않는 특유의 세계관은 지금의 일본 사회에도 건재하다. 이런 사고방식이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명분을 뒤섞어 버리는 부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기저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종교의 정치세력화가 일본만의 문제일까? 일본의 공명당처럼 메이저 정당으로 발전한 사례는 아직 없지만, 한국에서도 대형 교회 등 종교 세력이 정계 진출을 시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종교 단체와 관련한 스캔들이 몇 차례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종교 단체가 나서서 신자들에게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권유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 정도면 한국의 정치판에도 종교 그림자가 꽤 짙게 드리워지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사실 대중의 표를 의식한 정치가들이 신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종교 단체에 추파를 던지는 일은 비밀도 아니다. 아베 전 총리의 암살과 관련이 있다는 특정 종교 단체의 행사에는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의 유명 인사,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축전 동영상을 보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호기심이 생겨서 찾아보니,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이 보낸 축전 동영상도 버젓이 공개되어 있었다. 종교와 정치의 거리감이 자꾸만 좁혀지는 것이 일본만의 현상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 단체도 이익 집단인 만큼, 종교와 관련이 있는 사안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갖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교 단체가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선택에 불과한 신앙을 볼모로 개인에게 공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종교 단체가 신자들을 ‘무기’ 삼아 신앙과 무관한 사안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속적인 권력으로 변질된 위험성도 크다.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망은 종교와 결탁한 현대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이것을 한국 정치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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