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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전주환에게 천천히 살해된 그녀가 겪은 3년의 공포

입력
2022.09.28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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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
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피해자의 파괴된 일상에도 손 놓았던 공권력
한참 잘못되고 갈 길 먼 현행 스토킹 방지법
스토킹 진짜 범죄로 보고 사법정책 점검해야

2022년 9월 14일 밤 9시경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는 비상벨이 울렸다. 흉기에 찔린 여성이 누른 비상벨이었다. 피해자는 바로 구급차로 실려갔지만 수술 중에 숨졌다. 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31세 전주환이다. 처음에는 단순 살인사건인 줄 알았으나, 3년간 스토킹이 있어왔고 불법촬영과 협박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발생한 보복살인이었다. 피해자의 3년은 어떠했을까? 그녀의 절망스러운 3년을 감히 추측해 본다.

입사 동기가 2019년 11월부터 지속적인 전화와 문자를 보낸다. 직장 동료였기에 이 괴롭힘이 상식적 수준에서 해결되기를 바랐다. 입사하자마자 동료를 신고하는 사람으로 소문나는 것이 편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더군다나 2019년엔 관련법도 없어 스토킹으로 신고한들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2021년 10월 그 스토커가 역내 여자 화장실에 불법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한 것을 알게 된 이상 신고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범인을 긴급체포하였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이유란다. 불법촬영된 영상물을 모두 지울 텐데 어찌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으며, 끈질기게 연락하는 스토커인 그가 과연 도주를 할까? 더 집요하게 괴롭히겠지! 법이 가해자의 삶을 배려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나의 일상은 파괴되었다. 낯선 번호가 찍힌 전화가 오면 혹시 그가 번호를 바꿔서 전화했을까 봐 받을 수가 없었고, 회사를 갈 때도 매번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직장인들은 자기 계발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지만 나는 담담히 일상을 견뎌내는 것도 버거웠고 내 주변 사람들도 피해를 입을까 봐 홀로 갇혔다. 범죄자이지만 여전히 자유롭게 활보하는 그와 달리 나의 삶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봉쇄되었다. 그리고 2022년 9월 14일, 복수심으로 무장한 채 여자 화장실에서 나를 기다린 그에 의해 매우 느린 죽음의 공포는 현실이 된다.

피해자의 삶에는 파괴된 일상이 보인다. 그 망가진 일상을 두고 경찰은 피해자가 추가적인 신변요청을 하지 않았기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하고, 법원은 기각된 영장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불법촬영 전력이 있는 자를 고용하여 직장 동료는 물론 시민들도 불법촬영의 피해자로 만들었다. 모두의 무책임과 변명 속에 피해자는 3년 동안 천천히 살인의 피해자가 되었다.

망자의 각색된 3년의 삶은 1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스토킹 방지법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은 가해자 처벌 준비만을 하였고, 가해자의 권리를 침해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형사사법 제도 안에서 피해자는 철저히 배제되었고 두려워했다. 피해자는 일상이 불가능하였지만 스토커는 피해자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였고, 불법촬영자는 여전히 여자 화장실에 출입하였다.

한참 잘못되었다. 스토커가 일상을 보장받는 현실이 잘못되었고, 피해자가 일상을 포기하고 보호소로 가야 하는 정책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통상 범죄자는 범죄 후 도주하고 붙잡히지 않으려 몸을 숨긴다. 그러나 전주환은 일상을 영유하였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피해자가 후퇴하고 도망치듯 보호소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스토킹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지 않았던 과거 사회 속에서 임시적으로나마 피해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의 잘못된 유물이다. 스토킹을 범죄로 선언한 사회라면 피해자의 삶을 위축시키거나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게 적극적인 긴급임시 조치가 필요한 이유이다.

미국 스토킹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만 16세 이상의 미국인 중 1.3%가 2019년 한 해 스토킹 피해를 당했고, 이 중 29%만이 신고하였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일상의 자유는 물론 친구와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스토커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내일 당장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피해자들의 일상을 파괴하였다.

'스토킹이 범죄 맞습니까?' 형사사법기관에 묻는다. 범죄가 맞다면 다른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취급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를 도망가게 해야 한다. 내일 당장이 두려운 피해자,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있는 피해자가 있다면 이는 형사사법이 잘못한 것이다. 스토킹 정책은 스토킹을 진짜 범죄로 바라보고 다시 점검해야 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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