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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마지막 향토서점 '계룡문고' 폐점 위기..."존치 방안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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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마지막 향토서점 '계룡문고' 폐점 위기..."존치 방안 마련해야"

입력
2022.11.28 18:20
수정
2023.02.0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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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소유 대전TP, 계룡문고 임대료 인상
2023년부터 사실상 4배↑...퇴거명령까지
인상한 임대료 연체에 명도소송도 청구
독서문화 진흥 기여..."경제논리 적용 가혹"

입주한 건물 소유주인 대전테크노파크의 임대료 대폭 인상과 퇴거명령 등으로 폐점 위기에 놓인 계룡문고. 입구에 이동선 대표가 지난 9월 수상한 대통령상을 축하하는 직원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최두선 기자

입주한 건물 소유주인 대전테크노파크의 임대료 대폭 인상과 퇴거명령 등으로 폐점 위기에 놓인 계룡문고. 입구에 이동선 대표가 지난 9월 수상한 대통령상을 축하하는 직원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최두선 기자

"계룡문고는 구도심에서 아이들과 함께 쉬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예요. 한 달에 적어도 3번 이상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여기서 책을 보고, 쉬고, 얘기를 나눠요. 없어진다는 건 상상도 못하겠어요."

27일 오후 6시쯤 대전 중구 계룡문고에서 만난 윤숙(48)씨는 "계룡문고가 폐점 위기에 처한 걸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윤씨는 "계룡문고는 우리 아이 유치원 때부터 많은 추억을 만든 소중한 공간"이라며 "대전시와 중구청, 그리고 시민들이 나서서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26년 전 문을 연 대전지역 마지막 향토서점 계룡문고가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과 퇴거 명령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28일 계룡문고와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시 산하기관인 대전테크노파크(TP)는 이 기관 소유 건물에 입주해 있는 계룡문고에 임대료 체납 등을 이유로 퇴거 통보를 한데 이어 지난 2일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1996년 대전 원도심인 중구 은행동에 개점한 계룡문고는 2007년 선화동 현 건물 지하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건물을 2019년 9월 매입한 대전TP는 계룡문고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승계해 오다 지난 3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임대료와 관리비 인상을 요구했다. 조건은 기존보다 임대료는 204%, 관리비는 312% 올리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계룡문고 측이 내야 할 임대료와 관리비는 종전과 비교할 때 최대 4배까지 치솟는다. 계룡문고 측은 3월 이전까지 월임대료와 관리비로 562만 원을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올해까지 시의 임대료 50% 감면 정책이 적용된 덕분이다. 하지만 대전TP가 요구한 인상안으로 재계약하게 되면 당장 4월부터 매월 1,950여만 원을 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에 계룡문고 측이 "재계약 조건은 너무 부담이 크다"고 호소하자, 대전TP 측은 올해까지만 임대료는 57.39%, 관리비는 140.26%를 올리는 것으로 협의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당초 요구한 인상안대로 매월 1,950여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

폐점 위기에 처한 계룡문고 전경. 최두선 기자

폐점 위기에 처한 계룡문고 전경. 최두선 기자

협상이 일단락됐지만 계룡문고가 코로나19 재확산과 매출 회복 부진 등으로 지난 4월부터 임대료를 납부하지 못하자 대전TP측은 지난 9월 계약해지와 함께 퇴거해 달라고 통보했다. 이달 2일엔 건물명도소송도 냈다.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 분의 임대료·관리비 납부에 대한 소송도 제기했다. 이는 50% 감면 이전 금액으로 환산한 소급분이다.

대전TP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경우 소유한 건물 입점 기관이나 업체, 단체 등과 재계약할 때시 시 관련 조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라며 "계룡문고의 경우 지난 4월부터 임대료가 연체된 만큼 행정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동선 대표는 "그동안 감면된 임대료도 겨우 맞춰 납부해 왔는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영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임대료를 제 때 납부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인상폭이 너무 과하다. 지역사회에서 계룡문고가 그동안 해 온 역할은 고려하지 않고 소통은커녕 소송을 내서 앞이 캄캄하다"라고 말했다.

지역에선 독서문화 활성화에 노력해 온 마지막 향토서점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인 계룡문고에 '경제적 잣대'만 들이대 문을 닫으라는 것은 과도한 조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동선 대표는 지난 20년 간 500여 회의 작가 초청 문화행사를 비롯해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 대상 서점 견학, 학교 독서 프로그램 후원, 부모와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 작은도서관 설립 운영지원 등을 해 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월에는 '독서문화상'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지역 문학계 한 인사는 "계룡문고는 문경서적, 대훈서적이 문을 닫은 이후 마지막 남은 향토서점이자, '책 읽어주는 서점'으로 지역 독서문화 진흥과 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고, 또 앞으로 기여할 그 가치를 고려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계룡문고 안쪽에 마련된 어린이 독서공간. 이 곳에선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눕거나 앉는 등 편한한 자세에서 책을 보고 쉴 수 있다. 최두선 기자

계룡문고 안쪽에 마련된 어린이 독서공간. 이 곳에선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눕거나 앉는 등 편한한 자세에서 책을 보고 쉴 수 있다. 최두선 기자

조원휘 대전시의원은 "지역 독서문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계룡문고는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관련 조례를 개정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이장우 시장이 적극적인 정책결정을 통해 계속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계에선 일본 등과 같이 선진국형 동네서점 활성화 모델 구축을 통해 계룡문고를 비롯한 지역 서점을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 북센터'는 하치노헤시가 직접 운영하는 서점으로, 일본 내에서도 눈에 띄는 지역서점 활성화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대전시 관계자는 "지역서점 활성화를 위해 조례를 제정했으며, 내년 예산으로 1억3,000만 원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다"며 "자치구와 함께 동네서점 활성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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