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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 공표의 추억

입력
2023.01.02 04:30
수정
2023.01.02 09:4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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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관계자가 검찰 상징물이 붙은 건물의 유리 겉면을 청소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가 검찰 상징물이 붙은 건물의 유리 겉면을 청소하는 모습. 연합뉴스

검찰 담당 기자는 크게 두 가지 일을 한다. 수사 상황을 충실히 잘 전달하는 기자가 있고, 검찰 내부 문제를 잘 짚어내고 들춰내는 기자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기자들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대체로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예 수사 상황만 전달하다가 검찰을 떠나는 기자도 부지기수다. 수사 기사를 많이 쓰는 이유는 소속 언론사에서 인정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사회적 이목을 끄는 수사 정보를 독점하다 보니 취재만 잘 되면 ‘단독 기사’를 쏟아낼 수 있다.

취재원은 사건 관계인이나 변호사 또는 정의감에 불타는 시민이나 익명의 제보자일 수도 있지만, 검찰 기사 대부분이 수사를 한다는 전제로 쓰기 때문에 취재원은 검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험적으로 보면 20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현재도 바뀌지 않았다. 기사 발굴을 위해서라면, 특히 단독 기사를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가는 언론 속성상 검사가 던져주는 정보에 초연할 기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검찰발 수사 기사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사 상황이 대부분 언론 보도라는 형태로 외부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검사와 기자의 유착 관계를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형법 제126조에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명시돼 있다. 수사 직무를 행하거나 이를 감독 보조하는 자가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자가 마음먹고 취재원을 밝혔다면 피의사실을 흘리고 다니던 검사들 다수가 법정에 섰겠지만, 아직 형사처벌된 검사가 한 명도 없는 걸 보면 검사와 기자의 끈끈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수사 기사는 검사와 기자를 종종 운명공동체로 만들어 버린다. 검찰은 여론을 먹고 살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수사 대상을 최대한 ‘나쁜 놈’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기자는 피의사실을 기사화하는 순간, 수사 대상이 해당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나오길 기도해야 한다. 공소장에 해당 내용이 빠지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면 오보를 쓴 기자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공동체라고 하지만, 기자들은 검사들 손바닥에서 놀 뿐이다. 천리안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아무리 뛰어난 기자도 검사가 알고 있는 수사 정보의 10분의 1도 알지 못한다. 그 작은 정보를 다른 언론사보다 먼저 보도했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진 않는다.

언론 속성상 불가피하다고 해도 올해는 수사 기사보다는 검찰 내부 문제와 비리를 파고드는 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검찰은 수사권이 축소됐다고 주장하는데, 신기하게도 검찰은 과거 어느 때보다 수사를 많이 하고 있다.

수사 기사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힘자랑하고 싶은 검찰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다. 이제는 검찰 내부에서 어떤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사건을 덮었는지, 무리한 기소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특수활동비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수사기관의 탈을 쓰고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지, 검사 출신 대통령과 어떤 교감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밝혀내는 게 저널리즘에 더 충실한 활동 같다.

기자들이 검사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 검찰에 필요한 것은 가속기가 아니라 브레이크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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