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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흑토끼

입력
2023.01.0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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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달 속에 산다는 전설상의 토끼를 옥토끼라고 부른다. 옥토끼라면 옥색 털인가 싶겠지만, 털빛이 하얀 토끼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흰색을 선호했다. 대낮에 뜬 밝은 해에서 왔다는 어원처럼 한국말에서 흰색은 밝고 맑은 것뿐만 아니라, 신성과 탄생, 꾸미지 않는 고결함과 청빈함을 상징했다. 태극기의 바탕이 흰색이고, 설날 떡국, 생일날 국수, 백설기도 흰색이다. 옛 소설 속 주인공들은 남녀 불문하고 흰 피부에 흰 손을 가졌다. 신화에는 백마, 백학이 나오고, 흰 사슴과 흰 호랑이, 흰 뱀 등은 상서로운 징조라고 읽었다. 나쁜 일을 쫓아내 주는 흰 소금도 벽사(辟邪)의 의미이다.

'하얗다'와 달리 '까맣다'는 사전에서도 불빛이 없는 밤하늘, 숯이나 먹의 빛깔로 서술된다. 어원상 검댕설, 흑곰설 등이 있는데, 불법과 부정, 무지, 음흉함과 사악함 등 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는 편이다. 검은손, 검은 마음, 검은돈, 까막눈, 시꺼먼 속 등이 그 예이다. 말 그대로 '검은 새'라는 까마귀는 옛날부터 기피 대상이고, 태양 아래서 그을린 얼굴은 귀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러면 좋은 의미로 쓰인 검은색은 없을까? 검은색은 세련, 권위의 이미지와 예의, 고급스러움, 이익을 상징한다. 우선 경제적 이익은 흑자이다. 전 세계적으로 격식과 예의를 갖출 때 입는 옷, 즉 판사나 법학자의 가운, 성직자의 사제복 등은 검은색이다. 여러 나라에서 제왕과 관원들이 검은색 옷으로 신분을 드러냈다. 검은 자동차는 고급차의 대명사인데, 한국의 모범택시가 검은색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색깔은 그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한 사회에서 성장하는 누군가의 고정관념을 만들고 드러내는 통로이다. 그런데 정작 색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반전이다. 오늘날 하얀 웨딩드레스는 순수와 신성함의 의미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지만,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좋은 날에 상복을 입는다며 집안 어른들이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화이트하우스나 화이트칼라가 각각 대통령의 권위, 전문직을 드러낼 때, 지구의 다른 편에서는 그저 소박함을 뜻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2023년 들어 자주 보이는 ‘까만 토끼’는 그간 흰 토끼에 굳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좀 더 말랑말랑하게 해 주지 않을까? 이제 곧, 푸른 하늘 은하수를 건너는 하얀 쪽배에 까만 토끼가 흰 토끼와 나란히 앉아 있는 그림도 어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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