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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검찰 조사 영상 보니 '자백' 조작"...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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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검찰 조사 영상 보니 '자백' 조작"...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무죄"

입력
2023.03.3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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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지목된 남편과 딸 14년째 복역 중
글씨 못 쓰던 남편의 '논리적인 자술서'
경계성 발달장애 딸은 "강압수사에 취약한 모습"
"당연히 무죄 이끌어내고 누명도 벗어야"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검찰 조사 영상을 보니까 자백이 담긴 조서가 조작된 거였습니다.”

감옥에서도 끝내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억울함을 풀어 온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낙동강변 살인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모두 재심을 이끌어 내 승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줬다. 그가 이번에 주목한 사건은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망자의 남편이 2009년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모습.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망자의 남편이 2009년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모습.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이 사건은 2009년 순천에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나눠 마신 여성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치명상을 입은 사건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사망한 여성의 남편(73)과 딸(39). 남편은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14년째 복역 중이다. "남편과 딸이 아내 몰래 성관계를 가져오다 들키자 앙심을 품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이들의 혐의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검찰 조사 방법부터 증거들까지 의혹이 많다.

박준영 변호사는 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 사건을 다루게 된 계기를 밝혔다. “사실 저는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검찰청에 가서 한 11시간 분량 조사 영상을 보니까 이 조서가 조작됐구나, 자백이 담긴 조서가 조작된 거였습니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글씨 못 쓰는 남편의 '논리적인 자술서'

의심은 주변 정황에서부터 제기됐다. 머슴살이를 하느라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남편은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체포 당일(2009년 8월 26일) "범행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썼다. 그런데 조사 영상에서는 범행을 계속 부인한다. 박 변호사가 공개한 조사 영상에는 수사관이 “당신이 이틀 동안 범죄 안 했다고 그랬잖아”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범행을 인정한 자술서의 신빙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죽였어요?”라는 수사관의 물음에 남편은 “안 죽였어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체포 8일 후 범행 수법을 상세히 적은 자술서를 또 작성한다. 이번에는 분량도 상당히 길고 글씨도 훨씬 반듯해졌다. 박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이 자술서에서) 상황을 굉장히 논리적으로 진술합니다. 글을 논리적으로 쓸 수 있는 분도 아니고 오탈자 없이 저런 글을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자술서는 검사실에서 검사와 수사관이 보여주면서 그리게끔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검찰이 한글을 못 쓰는 남편에게 자술서를 쓰게 한 뒤 "스스로 범행을 자백했다"는 강력한 증거로 활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남편이 체포 당일 쓴 3줄 분량 자술서(위)와 8일 뒤 쓴 자술서(아래). 글씨를 쓰지 못했던 남편은 두 번째 자술서에서 비교적 반듯한 글씨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썼는데, 박 변호사는 "검사가 보여주고 따라 그리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남편이 체포 당일 쓴 3줄 분량 자술서(위)와 8일 뒤 쓴 자술서(아래). 글씨를 쓰지 못했던 남편은 두 번째 자술서에서 비교적 반듯한 글씨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썼는데, 박 변호사는 "검사가 보여주고 따라 그리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경계성 발달장애 앓는 딸 "강압 수사에 아주 취약"

검찰이 남편보다 먼저 '자수'했다고 한 딸은 경계성 발달장애를 앓고 있었다. IQ 74, 75 정도로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IQ가 낮다 하더라도 강압수사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사람은 강압수사에 대처하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아주 취약했다"며 "그건 (조사) 영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과 딸의 조사 영상은 재판과정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부녀가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 역시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사) 영상을 보면 (성관계를) 인정 안 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다"며 "인정 안 하는데 (검사가) 막 계속 윽박지른다. 그때 (피의자들이) 수동적으로 예, 예 하는 어떤 그런 형태"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조사 영상에 대해 "(검사가) 아주 윽박지르는, 정말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대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밟아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밟아버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검사와 수사관이 정보를 제공하거나 유도하고 회유하고 압박하고 기망하고 그 못된 수사기법은 다 동원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망자의 남편이 2009년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모습. 검사는 그에게 반말로 "똑바로 앉아라, 생각을 해서 말하라"고 말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망자의 남편이 2009년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모습. 검사는 그에게 반말로 "똑바로 앉아라, 생각을 해서 말하라"고 말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1심 재판부 "검찰 수사 믿기 어려워" 무죄 선고.. "무죄 받고, 누명도 벗어야"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부녀의 부적절한 관계가 살인 동기가 됐다는 검찰 수사 내용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자백을 번복했지만 중요한 진술은 서로 일치한다"며 판결을 뒤집었고, 2012년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핵심 증거인 청산가리가 막걸리에서는 검출됐지만 사건 현장 등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청산가리를 넣었다던 플라스틱 숟가락에서도 성분이 나오지 않는 등 논란이 많았다.

광주고법은 지난 21일 이 사건을 재심할지를 판단하기 위한 심문기일을 처음으로 열었고, 5월 23일 2차 심문기일이 열린다. 박 변호사는 "100% 재심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추거나 위법 수사를 하는 경우 재심이 허용되는데, 이 사건은 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밝혔다.

"제 목표는 이분들이 무죄받는 건 당연하고요. 이분들에게 가장 억울한 부녀 성관계, 사람들은 또 무죄는 맞지만 성관계는 있었겠지라고 오해할 수 있거든요. 그것까지 완벽하게 이분들은 누명을 벗어야 됩니다. 명예를 회복해야 되고 그게 이분들과 또 그 가족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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