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으려면

입력
2023.10.21 04:30
24면
0 0

<138>성교육, 정파·종교가 아닌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야

아동 성교육 도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표지.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된 이 책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 성관계를 맺고 아기를 임신해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다. 덴마크 정부로부터 아동도서상을 받기도 했고, 우리나라 여성가족부가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배포하는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됐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국회의원과 보수 기독교 단체가 반발하면서 여가부는 책을 회수했다.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나오는 단골 질문이다. 정말 천진난만하게 묻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질문하는 어린이도 있다. “그러게요?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하고 되물었을 때, ‘엄마, 아빠가 손잡고 자면 돼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나마 양반이다. 대개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자신이 집에서 들은 각종 ‘탄생 설화’ 같은 잉태의 비밀을 나눈다. ‘황새가 물어다 줬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같은 클래식한 이야기부터 최근에는 대형 마트에서 구해왔다는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가 등장했다지만 그뿐, 여전히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받았던 교육도 그랬다.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는 질문에 많은 어른들이 그저 머쓱해하며 웃어넘기거나 딴청 피웠고 심지어는 뭐 그런 걸 궁금해하냐며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그나마 친절한 몇몇 어른들이 ‘같이 자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바람에 나는 한동안 수련회에서 함께 잠들었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두려워 했다. 그때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린이들의 ‘기원’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관심과 질문은 여전히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돼!”라는 말로 자주 얼버무려진다.

정말로 크면 저절로 알게 되나요?

성에 대해 궁금해하던 어린이는 훌쩍 자라 성교육을 하는 어른이 됐고, 그때 얼버무리던 어른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사실 그 어른들도 잘 몰라서 그랬다. 실제로 부모 대상 성교육을 다니면서 자녀 성교육 문제로 골머리 앓는 양육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나마 양육자 대상 성교육을 찾아다니고 그 교육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특히 자녀 성교육에 관심 갖는 남성 양육자는 유니콘처럼 희귀하다. 일부러 일이 끝난 저녁 시간대에 교육 일정을 잡고 ‘아빠를 위한’이란 타이틀을 걸어 보아도 모집이 쉽지 않다. 양육자 교육을 들으러 온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은 더 커진다. 아들이 성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성교육을 해주고 싶은데, 자녀가 민망해할까 봐 남편 옆구리를 찔러 보아도, ‘크면 알게 된다’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다’ 등의 이야기로 딴청만 피운다는 것이다. 실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약 4,000명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경로 중 ‘부모님’은 고작 2.3%다. ‘학교 성교육’ 48.9%, ‘SNS, 유튜브 등 인터넷’ 22.5%, ‘친구’ 17.1%에 비하면 더욱 비극적인 수치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장 큰 문제는 성에 호기심 갖는 자녀에게 호통 칠 때 생긴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성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고 억누르려 할수록 부모와 성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는 단절된다. 안 그래도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회에서 가장 친밀하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수치심과 죄책감은 약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드는 올가미가 된다. 단적으로 ‘온라인 그루밍 성폭력’ 같은 문제 상황에서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말이 피해자의 언어가 아닌 가해자의 협박으로 쓰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앞서 언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도 혼자 알아보는 경우가 35.2%로 가장 높았고 ‘친구와 상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0.8%였다. ‘부모님과 상의’하겠다는 비율은 그에 절반 정도인 15.9%로 여자 청소년 21.5%, 남자 청소년은 고작 10.8%였다. 이처럼 청소년의 성에 대한 무관심과 터부로 인해 많은 청소년이 성과 관련한 폭력, 성 매개 감염 등을 경험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문제가 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통제와 방치를 넘어서,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떤 어른들의 말처럼, 성에 대해서도 자연히, 저절로 알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수학, 영어 같은 다른 교과목이 그렇듯, 성에 대한 이해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결국 모두 쉬쉬하고 ‘자연스레’라는 말로 외면한다면 결국 ‘야동’이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될지 모른다. 당장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초중고등학생 약 8,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만 살펴봐도, 청소년의 48.6%가 음란물을 ‘본 적 있다’고 응답했으며, 최근 1년간 얼마나 자주 봤는지에 대한 물음에, 61%가 반복적으로 음란물을 시청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안타깝지만 규제로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믿음은 환상에 가깝다. 성인용 영상물 이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인용 영상물 이용 온라인 매체에서 성인 인증을 했는지 조사한 결과, ‘개인방송/동영상 사이트’가 56.5%로 그나마 가장 높은 편이었으나 고작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포털에서는 39.8%, SNS 39.3%, 다운로드 사이트 41.2%가 성인 인증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 즉 이들은 어렵지 않게 온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성인 인증 제도라는 규제를 뛰어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통제와 방치 사이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성에 대한 터부를 넘어서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성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가정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인식을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공간 중 하나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말문을 열면 좋을까? 가장 많은 양육자들이 어려워하는 탄생 비화부터 살펴보자. 중요한 건 맥락이다. 사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이 놀라는 건, 성관계 방법 그 자체에 있기보다, ‘우리 부모가?’에 가깝다. 가정 내에서 성은커녕 손도 잡지 않고 성을 존재하지도 않는 척 취급하던 이들이 알고보니 성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그 괴리에서 오는 충격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성교육의 쟁점은 얼마나 매끄럽고 정확하게 내용을 잘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 괴리를 줄일 수 있느냐다. 그런 점에서 가장 경계하는 말이 바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다. 농담처럼 이야기되는 이 말에 가족 내에서 성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그대로 내포되어 있다. 이런 문제의식과 함께 가족 내에서 조금씩 성에 대한 이야기를 넓혀 나가 보면 어떨까? 대단히 거창하고 진지할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과 기대로 사랑을 하고 자녀를 갖겠다 결심했는지부터 차근히 말이다. 이렇게 가정에서 성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지 보여주면, 자녀들도 그 과정을 덜 낯설고 어색하게 느낄 수 있다. 단언컨대 이런 성교육이야 말로 학교에서 절대 할 수 없는, 그러나 가장 필요한 성교육이지 않을까?

청소년의 성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이 외에도 어린이·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갖는 각종 호기심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 아주 단적으로 학교에 비치된 많은 책 중 가장 너덜너덜한 책은 늘 성과 관련한 교육 도서였다. 그만큼 중요한 성교육이지만, 사실 나도 성교육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심지어 학창시절 배웠던 기억을 토대로 성교육이 그저 정자, 난자 이야기만 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건 ‘N번방 사건’을 목격하고 나서다. 그 사건에서 청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 사건 어디를 살펴봐도 성적 욕구는 없다. 그저 누군가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폭력이지, 어디에도 성적인 욕구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성적인 욕구와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게 했나. 청소년의 성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을 외면하고 성적 주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성문화 때문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방치한 어른들의 잘못은 아닌가?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떤 문제의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이기도 함을 직시하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청소년의 성을 쉬쉬하지 않고 그들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며 안전하고 즐겁게 자신의 성적 욕구를 탐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또 다른 성적 주체를 존중하며 관계 맺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성교육이 바로 그런 자리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갈 길은 멀다. 김신현경 교수가 젠더살롱에서도 지적했듯, 최근 성교육이 어떤 보수적인 종교, 정치 세력에 의해 예산이 삭감되고 언어를 빼앗기고 도서가 폐기되는 등 수모를 겪고 있다. 이런 풍토가 계속되면 성교육은 또다시 정자, 난자 이야기로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선의 성교육 활동가들이 교육 준비에도 모자란 시간을 쪼개어 청소년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기 위한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부디 기억하자. 앞으로도 어린이들은 계속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우리의 미숙했던 대답이, 성을 숨기고 외면했던 태도가 불러온 끔찍한 결과를 기억하자.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는 특정 정파와 종교에 기반한 성교육이 아닌, 지금 우리 어린이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그런 성교육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