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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 가수냐' 데뷔 20일 만에 1위 한 아일릿도 못 피했다

#1. 아이돌그룹 르세라핌이 미국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라이브 논란에 휩싸였다. 13일 공연에서 멤버들 대부분이 호흡이 달리거나 음이탈했다. 이어진 20일 공연에서는 라이브 실력을 감추기 위해 녹음 음원(AR)을 크게 틀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2. 하이브 신인 그룹 아일릿도 데뷔 20여 일 만인 지난 13일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해 '괴물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앙코르 무대에서 일부 멤버들이 불안정한 음정을 드러내 가창력 논란이 빚어졌다. 아이돌그룹 가창력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높은 수준의 가창력을 필수로 여기는 대중의 인식과 녹음 기술 발전으로 가창력 외 역량을 중시하는 K팝 업계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노래 실력이 우선돼야 하지만 과거처럼 가창력으로만 가수를 평가하면 K팝 시장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이돌 가창력 논란은 십수 년간 지속됐다. 아이돌 2세대(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 때부터 등장한 'MR(반주음악을 뜻하는 속어) 제거' 영상이 대표적이다. 해당 영상은 가수들의 음악방송 무대 영상에서 반주음악만 없애 현장 목소리만 남긴 편집본으로 가수들의 가창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많은 가수들이 MR 제거 영상의 희생양이 됐다. 기술 발전으로 녹음 음원(AR) 질이 높아지면서 MR 논란도 사라졌다. 아이돌 4세대(2020년대 초~현재)는 음악 방송뿐 아니라 단독 콘서트에서도 대개 AR을 사용한다. 하지만 AR을 사용하지 않는 지상파 음악 방송 앙코르 무대가 새로운 뇌관이 됐다. 앙코르 무대에서 음정이나 음색이 불안정한 가수는 1위를 하고도 비판 대상에 올랐다. K팝 아이돌 팬 이혜주(22)씨는 "멤버 전부가 메인보컬처럼 노래하길 원하는 게 아니라 자기 분량만 잘 소화하길 바란다"며 "이런 수요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K팝 콘텐츠에 몰입하기 어려워질 때가 많다"고 했다. 아이돌 가창력 논란은 과거까지 소환하고 있다. 과거 아이돌 무대를 찾아 가창력을 비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H.O.T나 젝스키스, 베이비복스 등 아이돌 1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음악방송 무대를 다시 찾아보며 재평가하는 콘텐츠가 유행이다. 누리꾼들은 "저때는 '저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보니 너무 잘한다" " 펄쩍펄쩍 뛰는 안무에도 추임새까지 챙긴다" 등 열광하는 반응을 보였다. JTBC는 최근 보컬리스트들이 걸그룹에 도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 온 파이어'를 선보였다. 과거 외모가 출중하거나 대형 소속사 출신인 연습생에게 유리했던 형식에서 탈피해 가창력에 집중한다는 취지다. 아이돌 가창력 논란이 반복되는 데는 K팝 업계 변화가 결정적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비주얼을 우선하고 기술로 음악을 만드는 K팝 업계에선 이제 '라이브를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웬만한 무대 일정은 AR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창력보단 외모나 댄스 실력 등이 더 우선된다는 분석이다. 또 과거에는 소수정예로 장기간 훈련을 거친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에는 가창력보다 유행에 민감한 아이돌그룹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대중의 눈높이는 높아지면서 업계와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대중들은 여전히 가창력을 아이돌의 주요 역량으로 평가한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아무리 K팝 아이돌 음악이 특수적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기획된 무대를 논란 없이 해낼 정도의 실력은 갖춰야 한다"고 했다. 정 평론가도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수들도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거에는 고음이나 풍부한 성량 등을 중시했다면 최근에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가창력과 음색을 선호한다. 김 평론가는 "과거 고음을 내지르는 역량을 중요하게 여기진 않지만 이지리스닝(느긋하게 듣는 경음악풍의 팝 장르)이 대세가 됐다"며 "가창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기준만 적용하면 '요즘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고만 재단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와 대중의 변화도 요구된다. 정 평론가는 "오늘날 AR 무대가 당연시된 건 'MR 제거' 영상으로 아이돌이 끝없이 조롱당했던 경험의 방어적인 결과이기도 하다"며 "이번 논란들 역시 단 몇 초의 장면으로 아이돌을 과도하게 흠 잡는 방식으로는 개선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김 평론가도 "가창력에 대한 극심한 비난 역시 악플 행렬의 일종이자 상대 아이돌을 깎아내리려는 팬덤 대결의 하나"라며 "K팝 팬들이 올림픽처럼 아이돌을 순위 매기고 비판하기보단 K팝 특성과 맥락을 감안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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