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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옥새 파동' 기시감… 총선 3주 앞두고 與 파열음

2024.03.19 04:30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종섭 주호주대사,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거취를 두고 충돌하면서 지난 2016년 여권의 '옥새 파동'이 회자되고 있다.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이나 양상에선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불과 총선을 1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힘겨루기 양상이 노출된 점은 공통적이다. 여권에서는 갈등이 심화될 경우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2016년 3월, 20대 총선을 불과 20일 앞두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일부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갔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실린 친박근혜(친박)계 공천 작업에 김 대표가 반발해서 벌어진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갈등의 정점을 찍은 뒤 김 대표는 친박계와 마라톤 회의 끝에 친박계 후보로 논란이 된 일부 지역 무공천으로 타협했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공천 국면에 본격 돌입하기 전까지, 흐름은 새누리당에 나쁘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도 새누리당의 우세를 점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12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에 패해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2016년 당정 갈등은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진박 감별 논란'에서 이어지는 계파 갈등 및 보수 분열 성격이 강했다. 반면 이번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에 다시 고조되고 있는 신경전은 이 대사와 황 수석 등 대통령의 인사권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여권 1, 2인자인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충돌했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사실상 '미래 권력' 대 '현재 권력'의 갈등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이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위원장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요구"라며 "반면 윤 대통령 입장에선 (이 대사, 황 수석 등에게)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데 여기서 밀리면 완전히 미래 권력에 자리를 내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여당에 불리한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선거 국면에서 당정 간 파열음이 유권자들에게 좋게 해석될 리 없다"며 "어느 선에서 한 위원장의 요구를 윤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자체가 불안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즉각 귀국과 언론인 테러 발언으로 논란이 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면서 용산을 압박한 것은 달라진 여권 내부의 권력 지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1월 중순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당시와 달리 공천이 끝난 상태에서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여권의 무게추가 한 위원장 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가장 단적인 변화는 소위 '찐윤'이라 불리는 친윤석열계 핵심들의 변화다. 김 여사 명품백 논란 때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먼저 살폈던 이용(비례대표) 의원은 18일 SBS 라디오에서 '대통령실이 이 대사를 즉각 귀국시켜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고, 황 수석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날 경기 분당을에 공천을 받은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에 이어 이 의원까지 윤심(尹心)을 상징하던 대표적 인사들이 한 위원장의 용산 압박에 동조한 것이다. 불과 두 달 전 김 여사 명품백 논란으로 초래된 당정 갈등 당시, 이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의원 단톡방에 '윤 대통령의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 철회' 내용이 담긴 기사를 공유하면서 한 위원장 비판의 선봉에 섰다. 그랬던 이 의원이 두 달도 안 돼 '한동훈 감싸기'에 나선 것은 '수도권 위기론'과 맞닿아 있다. 선거 때마다 수백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의 최근 여야의 팽팽하던 지지 흐름은 국민의힘에 불리한 쪽으로 양상이 뒤바뀌고 있다. "표 앞에 장사 없다"(김웅 의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원들의 커지고 있는 위기감은 대통령실 인사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친윤계 인사뿐 아니라 전체 지역구 출마 후보자의 절반인 122석(서울 48, 경기 60, 인천 14)이 몰려 있는 수도권 출마 후보들은 매일의 지지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발 늦은 대통령실의 반응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나경원 전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사는) 대통령실 잘못이 없었다고 해도 국민들은 '도피성 대사 임명'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라며 "본인이 들어와서 조사받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서울 중성동갑 후보인 윤희숙 전 의원도 KBS 라디오에서 "한 위원장이 지금 (이 대사와 황 상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해준 것"이라며 "현장에서 뛰는 선수 입장에서 대단히 감사한 일"이라고 힘을 실었다. 두 달 전과 달리 우군이 많아진 한 위원장은 이날 '침묵'에 돌입했다. 통상 출근길마다 했던 기자 문답도 중단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더 각을 세우지 않아도 총선 승리라는 명분에서 용산보다 우위에 있다는 판단을 한 위원장이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당 내부에서도 당정갈등으로 비쳐지는 부분을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선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제2의 당정갈등은) 과한 해석이다.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당정이 부딪힐 만한 조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공천이 당선이나 다름없는 대구·경북(TK) 후보들과 친윤계 핵심으로 당세가 좋은 이철규(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 박성민(울산 중구) 의원은 용산발 악재에 입을 닫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굳이 입을 열지 않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