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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김] 안티쿠쵸, 그리고 슬픈 페루

입력
2015.10.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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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특히 출장이 잦았다. 해외 출장 두 번에 늘 다니는 부산 출장을 합치니 집에 있었던 시간이 일주일도 채 안된다. 이번엔 처음으로 페루 출장을 나섰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풀어볼까 한다.

페루는 최근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한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에게 꽤나 친숙해졌다. 독자들은 알파카가 뛰어 노는 고원의 마추픽추를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느낀 페루는 ‘식문화가 참으로 다양한, 열려 있는 나라로구나’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요리사라는 직업 때문에 그렇겠지만 말이다.

페루의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하는 잉카 문명은 3000년 페루의 역사 중 겨우 2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잉카시대는 바로 스페인의 침략 지배를 받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 뒤로 페루는 500년 식민 지배 속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바꿔 나가야만 했기에 화려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케추아어와 스페인어가 페루의 공식 언어로 채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어가 일상어로 사용되고 있다. 해발 3,000미터의 도시인 쿠스코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들은 사실 원주민의 신전들 위에 지어진 것들이다.

안티쿠쵸를 파는 페루의 길거리 상점.
안티쿠쵸를 파는 페루의 길거리 상점.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일상에도 ‘스페인’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음식문화는 오죽 하겠는가. 원래 페루인들에게 알파카나 리마 등은 운송수단이나 털을 얻기 위해서 키웠던 성스러운 가축이었다.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물고기, 개구리나 새, 혹은 꾸이(Cuy)로 불리우는 기니피그 등을 주로 먹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돼지나 소, 말을 들여오면서 관련된 요리도 먹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 중에서 소고기 염통으로 만든 ‘안티쿠쵸(Anticucho)’가 유명한데 이 요리는 길거리에서 7솔(1솔=약 350원)에 팔기도 하고 고급 전문점에서는 20솔이 넘게 팔리기도 할 정도로 페루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마늘과 고추 두 세 종류에 아나토라는 향신료를 섞어서 소스를 만든 후, 염통을 얇게 저며 꼬치에 꿰어서 해바라기씨 기름을 두른 철판에 굽는다. 거기에 핑크색 암염(돌소금. 마라스에서 생산되는 암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을 뿌려 감자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안티쿠쵸의 유래는 이렇단다. 도축된 소의 살코기는 지배자인 스페인인들의 몫이었고, 남은 내장 중에 염통을 조리해 피지배자들인 페루인들이 먹으려고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들이 일제시대에 못 먹던 새조개를 해방 후에 먹을 수 있었다고 해서 ‘해방 조개’라고 불렀던 것이나,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들이 살 길이 없어서 팔기 시작했다는 곱창구이 등과 맥락이 같아 보여 마음이 편치는 않다.

안티쿠쵸를 파는 페루 여인.
안티쿠쵸를 파는 페루 여인.

역사 문제는 차치하고 여하튼 이곳의 식문화는 독특하다. 6세대를 넘게 산 중국 이민자들의 후예들 덕분에 길거리엔 치파(Chifa)라는 현지 중식당이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보다 많고 일본인 이민자들의 영향 덕에 니케이(Nikkei)라는 일식풍 음식이 고급화 됐다. 다음에는 치파와 니케이에 대해 적어 볼까 한다. 왜냐고? 앞으로 한국의 식문화가 어디까지 가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기분 좋은 상상이라도 조금 해보려는 심산이다.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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