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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피어나는 한여름 날의 풍경

입력
2023.07.1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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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과 수련은 생물학적 계통 따라 전혀 다른 식물
속씨식물 진화 이해하려면 '물의 요정' 수련 봐야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연꽃. 불교문화와 함께 꽃으로, 약으로, 밥으로, 재배 역사가 긴 식물 중에 하나다. 인위적인 생물 분류가 우세했던 과거에 일부 식물분류학자들은 연꽃이 수련을 닮았다고 그 둘을 통합해서 보았던 적이 있다. 생물학적인 종의 개념이 받아들여지고 최근 유전자정보(DNA)를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 접목되며 연꽃과 수련은 전혀 다른 혈통의 식물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연꽃과’에 속하는 식물은 국내에서 널리 재배하는 연꽃과 북아메리카 대륙에 자생하는 북미황련 두 종이 있다. 이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연꽃. 불교문화와 함께 꽃으로, 약으로, 밥으로, 재배 역사가 긴 식물 중에 하나다. 인위적인 생물 분류가 우세했던 과거에 일부 식물분류학자들은 연꽃이 수련을 닮았다고 그 둘을 통합해서 보았던 적이 있다. 생물학적인 종의 개념이 받아들여지고 최근 유전자정보(DNA)를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 접목되며 연꽃과 수련은 전혀 다른 혈통의 식물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연꽃과’에 속하는 식물은 국내에서 널리 재배하는 연꽃과 북아메리카 대륙에 자생하는 북미황련 두 종이 있다. 이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이번 여름, 비 정말 많이 온다. 마구 퍼붓다가 이내 뚝 그치는 소낙비가 동남아시아에서 만나는 ‘스콜'을 떠올리게 한다. 아열대 지방의 세찬 폭우를 갑작스레 돌변한다는 의미로 squall이라 부른다. 우리가 체감하듯이 기후가 급변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 지나가고 반짝 개는 순간, 때는 지금이다 싶어 후다닥 뛰쳐나가 수목원을 둘러본다. 언제 비 왔냐는 듯 또랑또랑 맑고 상쾌한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진다. 굵은 빗방울을 탈탈 털고서 연꽃은 잎과 꽃을 활짝 펼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꽃은 참 대단한 친구 같다. 성스럽고 아름답고 고아하고 그윽하고 역사적이고 심지어 맛있으니까. 연잎으로 싸서 찐 곡물이나 연근으로 요러하고 조러하게 만든 각종 요리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남녀노소, 종교 불문하고 연꽃이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미국 수련. 국내에서 흔히 수련이라고 부르며 연못에서 기르는 원예종의 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수련의 속명은 Nymphaea. 그리스어로 물의 요정을 뜻한다. 오늘날 속씨식물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의 모델 식물이 수련이다.

미국 수련. 국내에서 흔히 수련이라고 부르며 연못에서 기르는 원예종의 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수련의 속명은 Nymphaea. 그리스어로 물의 요정을 뜻한다. 오늘날 속씨식물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의 모델 식물이 수련이다.

연꽃 무리 너머로 수련이 보인다. 물에서 함께 너울대며 살 뿐 연꽃과 수련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생물학적 계통을 견주어 보면 고양이와 원숭이처럼 그 둘은 자못 먼 관계다. 연꽃 연(蓮)에 잠잘 수(睡)가 합쳐진 말이 수련이다. 하루 동안 얼마간 피었다가 또 얼마간 꽃잎을 닫기 때문에 사람처럼 마치 잠을 잔다는 뜻.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묻히고 자신을 찾아온 곤충을 품은 채 꽃을 오므리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그렇다. 다시 꽃이 열릴 때 곤충은 꽃가루 범벅이 되어 다른 수련에게 날아간다.

수련의 속명은 Nymphaea. 그리스어로 물의 요정을 뜻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몇 년에 걸쳐 자신의 정원에 있는 연못 속 수련을 그려 그 유명한 연작을 남겼다. 수련 예찬으로 치면 모네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먼저다. 콩코드 월든 호숫가를 걸으며 그는 1854년부터 1860년까지 수련에 대한 여러 기록을 남겼다. 소로의 친구였던 시인이자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소로에게는 그 어떤 식물보다 수련이 우선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실제로 소로는 지역 식물 연구에 몰두했던 인물이다. 식물분류학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콩코드의 식물 400여 종을 구분할 수 있었고 가슴 주머니에 메모장을 꽂고 다니며 꽃들의 개화가 시작되는 시기를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근 100년간 콩코드의 연평균 기온이 약 2.4℃ 올랐고 기존 대비 약 10%에 해당하는 44종의 식물이 감소했다는 것을 지금의 식물학자들이 밝히기도 했다. 그 원인은 지역 관광지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었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특정 종이 더는 그 자리에 못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식물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생물이 멸종의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예측 또한 학자들은 소로의 그 기록 덕분에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수련.

미국 수련.

오늘날 수련은 속씨식물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의 모델 식물이다. 1879년 7월 22일 찰스 다윈은 영국의 식물학자 조지프 후커에게 자필로 편지를 쓴다. 양치식물이 번성했던 시기를 이해하는 기존의 이론만으로는 속씨식물의 출현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며 꽃이 피는 식물이 백악기 중기에 뿅 하고 지구상에 등장한 건 기기괴괴한 미스터리라고 썼다. 속씨식물이 비교적 단시간에 수없이 많은 종으로 다양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분에 기여하는 또 다른 생명체, 즉 곤충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짐작도 했다. 유전자정보(DNA) 해독을 접목한 최근 연구는 그 실마리를 수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일까? 첫째, 수련은 식물 출현 초기의 모습인 나무를 벗어나 풀로 변모함으로써 몸집 불리는 데 쏟을 에너지를 아낀 선구자다. 둘째, 딱딱한 목질부를 만드는 대신에 유연한 몸체로 두둥실 물에서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꽃 안에 곤충을 초대하고 얼마간 꽃잎을 닫았다 다시 여는 수분 방식을 택했다. 더욱이 곤충에 의존만 한 것은 아니고 자기 스스로 수분을 하는 방식과 뿌리로 번식하는 전술도 펼쳤다.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개체가 늘고 자손이 번성했다. 처음에는 한 종류의 수련이 곤충 편에 꽃가루를 실어 보내면서 잡종을 만들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종이 생기고 더 다양한 종으로 번성해 지금의 수련 혈통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 인간이 지구를 점령한 후에는 인간에 의해 더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별스러운 날씨 탓에 이번 장마 왜 이래, 정말 기후위기 맞나 봐 두려움이 앞선다면 수련을 한 번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아득히 먼 과거부터 살아온 우리 행성의 선배가 걱정하지 말라며 맑은 얼굴로 피어 있을 테니까. 순수라는 관념을 식물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 그건 지금 피는 수련의 모습일 거다. 수련은 어쩌면 연꽃보다 더 대단한 식물일지도 모른다.

허태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허태임의 초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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