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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녹음 통화... 사생활 침해 심각하면 유죄 증거 못 쓸 수도"... 대법 첫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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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녹음 통화... 사생활 침해 심각하면 유죄 증거 못 쓸 수도"... 대법 첫 판단

입력
2024.01.0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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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불륜 의심해 남편폰 자동녹음 활성화
법원, 부부 사이 대화 파일만 증거능력 인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생활의 비밀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방식으로 상대방과의 통화를 녹음했다면, 불법 감청이 아니더라도 그 녹음파일은 유죄 근거로 쓰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모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12월 확정했다. 위탁선거법은 농·수협, 중소기업중앙회, 새마을금고 등 공공단체의 선거 관리를 규정한 법이다.

최씨는 2019년 3월 지역수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인들과 금품을 주고받는 등 위법한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유죄 입증 증거로 최씨 휴대폰에서 발견된 통화 녹음 파일을 내세웠다. 최씨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이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최씨는 이 대화 파일이 불법적으로 녹음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내가 나의 불륜을 의심해 나 몰래 자동녹음 기능을 활성화한 것"이라며 "나는 녹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통화자 본인이 알지 못하는 녹음이었으니, 불법 녹음이고 이에 따라 재판의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급심은 최씨가 아내와 통화한 파일의 증거능력만 인정하고, 아내 외에 다른 사람들과 통화한 파일은 증거능력은 인정하지 않았다. 통화를 하는 양 당사자의 동의 없이 녹음이 됐으므로 '불법 감청'이 맞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최씨와 아내의 통화는 최씨만 모르게 녹음됐을 뿐이므로 '불법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은밀하게 이뤄지는 선거범죄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매우 어려워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증거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부부 사이 대화 녹음의 증거능력만 인정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 재판부는 "아내가 최씨 동의 없이 통화내용을 녹음했기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아내가 최씨와 전화를 직접 했고 녹음파일을 타인에게 유출한 사실을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생활 비밀 침해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처럼 선거범죄 수사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최씨를 처벌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사자가 참여한 통화 녹음의 증거능력이 불법 감청으로 부정되지 않더라도, 녹음 경위나 내용 등에 비춰 사생활 비밀 등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힌 판결"이라며 "다만 이번 사건에선 사생활의 비밀 등이 중대하게 침해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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