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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적지 못한 추심 참상...더 이상 방관 말아야

입력
2024.02.15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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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뿌려진 대출 전단지. 곽주현 기자

길에 뿌려진 대출 전단지. 곽주현 기자


"잡지도 못하는데 무효로 해준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금융감독원이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한다는 '불법 사금융 계약 무효 소송 지원' 관련 피해자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이랬다. 그는 2년 전 불법 사금융 업자에게 20만 원을 빌렸다가 6개월 만에 갚아야 할 돈이 수천만 원으로 늘었고, 딸을 포함해 딸의 학교 담임 교사까지 불법 추심의 피해가 확산된 지옥을 겪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쓰고 있어 피의자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한다.

취재차 만난 불법 사금융 피해자 10명의 사연은 제각각이었으나 끔찍했다. 악랄함의 정도가 선을 넘어 결국 기사에 담지 못한 내용도 많았다. 2021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을 떠올릴 만한 성착취 피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성착취 피해자의 가족, 직장 동료, 친구 등의 연락처가 불법 사금융 업자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점이었다.

보도 이후 여러 제보가 이어졌다. 원금의 두 배가 넘는 이자를 갚았는데도 추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호소부터 통장까지 다 뺏겨 일을 못하고 있다는 사연까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절규에 기자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불법 추심 범죄자를 향해 "자신이 저지른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도, 현실 속 지옥에 사는 피해자들에겐 공허한 위로일 뿐이다.

물론 수사당국은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범죄자들을 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고만으로 불법 사금융 문제를 근절할 수는 없다. 수사는 더딘데 대포폰, 대포통장 뒤에 숨은 범죄자들의 협박은 끊임없다. 피해자들에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평생 후회할 만큼의 강력한 처벌'은 필요하다. 다만 정부는 왜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을 찾을 수밖에 없는지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사금융 시장 역시 '수요와 공급'으로 작동한다. 공급자 때려잡는다고 수요자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겨진 수요는 다시 공급을 부르는 악순환이 극악의 추심을 낳는 원흉이다.

이 악순환 고리를 끊는 방법 중 하나가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다. 이자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최고금리 인하가 최소 수십만 명을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았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고금리 인상이 잠재적 불법 추심 피해자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데 이견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 어느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어느 누가 표심에 도움이 안 되는 최고금리 인상 얘기를 꺼내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들이 방관하는 사이 수많은 이들이 수천% 이자 부담에 인격과 존엄이 말살되는 '지옥행' 암표에 흔들리고 있다.

안하늘 기자

안하늘 기자

안하늘 경제부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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