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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일 기다림 끝에... 삼성 반도체 노동자 자녀 '태아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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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일 기다림 끝에... 삼성 반도체 노동자 자녀 '태아 산재' 인정

입력
2024.03.22 18: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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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공장 근무 3명 자녀 '선천성 질환'
업무상질병판정위 "자녀 질병과 업무 인과관계"

병원 신생아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병원 신생아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근로복지공단이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에게서 태어난 자녀의 선천성 질환을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했다. 엄격한 전문가 논의가 이뤄지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심의를 통과해 태아 산재가 인정된 첫 사례다.

2021년 12월 국회에서 태아산재법(산업재해 보상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임신 중인 근로자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자녀가 선천성 질병을 가지고 태어날 경우 산재 인정을 받을 길이 열렸다. 기나긴 역학조사, 까다로운 인정 요건 탓에 그동안 ‘희망고문법’이란 평가도 받았지만, 조금씩 인정 사례가 쌓이는 분위기다.

근로복지공단은 22일 서울남부 질판위가 1990~2000년대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했던 여성 3명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자녀의 질환과 여성 노동자가 수행했던 업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업무상 재해로 판정한다”고 했다. 2021년 5월 시민단체 반올림을 통해 태아 산재를 신청한 지 1,037일 만이다.

세 여성은 출산 전까지 10여 년간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벤젠, 아세트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의 유해 물질에 노출됐다. 이들의 자녀는 선천성 거대결장증, 무신장증, 발달장애 등의 질병을 안고 태어났다. 질판위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반도체 업종 여성 근로자에게서 유산의 증거가 확인된 점 등을 산재 인정 배경으로 꼽았다.

이번 사례는 질판위를 거쳐 태아 산재가 인정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월 화학약품을 취급하던 간호사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뇌 기형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지만, 이는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의 자녀 질병을 산재로 인정한 2020년 대법원 판결을 감안해 유사한 사례를 질판위 판정 없이 인정한 것이었다.

근로복지공단 내부에서도 “전향적인 판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향후 유사한 사례를 산재로 인정할 ‘선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태아산재법 시행 이전에 태어난 자녀의 질병이 법의 소급적용을 받은 첫 사례”라며 “특히 질판위를 통해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 사례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반올림 측은 “그간 생식독성(화학물질 노출) 피해를 겪었을 수많은 반도체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조금의 위로라도 되기를 바란다”며 “생식독성 피해를 겪는 다양한 노동자를 확인하려는 노력, 생식독성으로부터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태아 산재 인정 범위를 ‘아버지’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LCD 산업부에서 근무하다 태어난 자녀에게서 질환이 발견된 ‘아버지 태아 산재’ 사례는 현재 근로복지공단 역학조사를 받고 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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