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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게 운수 좋던 날, 돈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

입력
2024.04.12 14:30
수정
2024.04.25 17:06
1면
0 0

[산 자들의 10년]
<1> 죄와 벌(상)
'수인 번호 4121' 전영준의 때늦은 편지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광주 교도소 수인번호 4121번 전영준.'

투박한 필체로 눌러 쓴 늙은 범죄자의 답장이 교회로 배달됐다. 그는 교회 목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던 15명의 죄수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연일 언론에 보도될 만큼 큰 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목사는 편지에 '양심 고백하고 사죄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얼마 후 단 두 명이 회신을 했는데 전영준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목사의 요구에 왜 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잔뜩 겁에 질려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너무도 두렵고,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거기서 내가 죽었어야 합니다. 처음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으로써 대신하고 싶습니다.


"월급도 직급도 올려줄게" 환갑에 찾아온 기회

모든 일은 결국 돈 때문에 시작됐다.

2014년 봄, 환갑인 전영준은 인천항에 정박된 거대한 여객선을 올려다봤다. 5층짜리 배의 지하 기관실이 앞으로 그의 일터가 될 예정이었다. 전영준에게 바닥 칸은 익숙한 공간이다. 23년째 화물선과 원양어선에서 조기수(①)로 일해왔기 때문이다. 새 회사는 "전 직장보다 많은 월급을 주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인천행은 급히 결정됐다. 인터넷을 뒤지다 조기장(②)을 뽑는다는 광고를 발견하고 팩스로 이력서를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선사에서 연락이 왔다.

용어설명. 그래픽=김대훈 기자

용어설명. 그래픽=김대훈 기자

"자리가 났는데요. 배를 타려면 빨리 오셔야 해요."

직원의 재촉에 마음이 쫓겼다. 다만, 부산에 함께 살던 가족들은 영 찜찜해했다. 아내는 "몇 푼이나 더 받는다고 거기까지 가려 하느냐"며 타박 조로 말했다. 하지만 전영준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평생 뱃일로 가족을 먹여 살린 그에게 직급을 높여 월급을 더 받는 자리는 분명 기회였다.

선사도 그가 꼭 필요한 듯 보였다. 임시로 채용 계약을 한 다음 날 바로 여객선에 타 달라고 요청했다. 기관부에 공석이 생겼다며 2등 기관사까지 맡아달라고 했다. 우왕좌왕 돌아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여기저기 쓰임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따로 교육받은 것도 없었다. 선사는 전영준에게 기분 좋게 제안했다.

"정식 계약서는 이번 항해에서 돌아오면 쓰자구요."

첫 출항. 여객선이 충남 인근 해로를 지나 제주를 향하던 새벽, 전영준은 지하 기관실에서 당직 근무를 섰다. 네 시간쯤 일한 뒤 오전 7시 30분이 돼서야 3층 선원 객실로 돌아왔다. 그는 근무 기록을 정리하며 숨을 돌렸다.

"쿵" 하는 굉음이 들린 건 한 시간쯤 흐른 뒤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거대한 배가 왼편으로 크게 휘청했다. 전영준은 균형을 잃고 넘어지다 침대에 허리를 부딪혔다. 정신을 부여잡으며 기울어진 선실을 기어올라 복도로 나왔다. 새파랗게 질린 다른 기관부 선원들이 보였다. 전영준과 동료들은 배가 급격히 기울고 있음을 느꼈다. 경험 많은 기관장 박기호는 침몰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직감했다.


일단 나가자. 배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손을 잡고 3층 갑판으로 가자.

선체에 물이 더 들어오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승객을 내팽개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기호의 말에 토를 단 선원은 없었다. 이들의 승선 경력은 모두 달랐지만 배가 위태로워지면 승객부터 지켜야 한다는 건 뭍사람도 아는 기본이다. 선원들은 승객을 버리고 구조 보트에 올라탔다. 해경이 구한 첫 탈출자들이었다. 얼마 뒤 선장 이준석도 팬티 차림으로 해경정에 급히 뛰어 올랐다.


여객선 운항을 책임졌던 선장 이준석. 그는 배가 침몰하자 승객을 버려둔 채 팬티 차림으로 구조선에 올라 탔다. 해양경찰청 제공

여객선 운항을 책임졌던 선장 이준석. 그는 배가 침몰하자 승객을 버려둔 채 팬티 차림으로 구조선에 올라 탔다. 해양경찰청 제공


죄수에게 온 '목사의 편지'

전영준은 목숨을 부지했지만, 대신 '책임의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배에 탔던 승객 등 304명이 죽었다. 선원인 그가 살려야 했던 사람들이다. 판사는 구조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전영준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선원 중 가장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배가 뒤집힐 때 허리를 크게 다쳤고 승선 기간이 하루에 불과했으며 침몰에 대한 직접 책임이 없는 기관실에서 일한 점이 참작됐다. 하지만 그가 승객을 버린 범죄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전영준은 선사가 왜 그토록 자신에게 목을 맸는지 재판을 받으며 알게 됐다. 그가 탔던 배는 늘 뒤뚱거리며 물 위를 움직였다. 선사는 건조된 지 18년 된 낡은 선박을 사들여 승객을 더 태우려 개조했다. 화물을 하나라도 더 싣기 위해 배의 균형을 잡아줄 평형수까지 덜 넣었다.

선사는 돈벌이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자들을 매수했다. 인천 해양경찰청 해상안전과장 장지명도 타깃이었다. 인천과 제주 사이를 오갈 배의 안전을 최종 점검해야 했던 공무원이다. 하지만 선사의 돈으로 성산일출봉과 해녀박물관 등을 다니며 제주 관광을 즐긴 그에게 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후 대형 여객선은 아슬아슬하게 바다를 떠다니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라며 뒤에서 속닥거렸다. 불안감을 느낀 이들이 잇따라 퇴사했고, 빈자리에 전영준이 채용됐다. 모든 일은 결국 돈 때문에 시작됐다. 몇 푼 더 벌어보려는 선사의 탐욕이 수백 명의 승객을 삼켜버렸다.

침몰 여객선 선장과 선원들이 2015년 1월 광주고등법원 재판정에 앉아 있다. 이들은 1심 선고 결과가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침몰 여객선 선장과 선원들이 2015년 1월 광주고등법원 재판정에 앉아 있다. 이들은 1심 선고 결과가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영준이 수감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집에서 연락이 왔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자식 중 유독 정이 가던 아이였다. 허리 통증이나 피부병은 죗값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지만, 딸의 죽음은 그를 공황으로 빠뜨렸다. 자식을 잃고 나니 고교생이 잔뜩 탔던 배에서 도주한 죄의 무게를 비로소 절감했다. 의미 없는 후회만 깊어졌다.

목사 장헌권으로부터 편지가 온 건 그때쯤이었다. 생면부지의 종교인이었지만 붙잡고 쏟아내고 싶었다. 늙은 죄수는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장헌권에게 도착한 또 다른 답장은 조타수 오용석이 보낸 것이었다. 그는 편지에 '배 벽면이 부실해 바닷물이 들어온 탓에 침몰 속도가 빨랐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적었다. 일종의 양심 고백이었다. 오용석은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동료들과 함께 도망쳤지만, 해경정을 타고 다시 여객선 쪽으로 돌아와 해머로 객실 유리창을 깬 뒤 승객 5명 가량을 구조한 게 참작됐다.

오용석은 편지에서 선장의 무책임을 탓했다. "배가 넘어간다고 고함을 쳐도 보고만 있었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하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사실 그는 3년 전 비슷한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 선원으로 탔던 여객선에 한밤 중 큰 불이 났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선장 등이 승객을 급히 대피시켜 화를 면했다.

오용석은 편지를 보내고 1년 반 뒤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60세였다. 장헌권은 "오용석이 '내 무덤의 비석에 진실을 밝혀달라는 문구를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감옥살이를 하던 조기장 전영준(왼쪽), 조타수 오용석이 장헌권 목사에게 보낸 편지. 장헌권 목사 제공

감옥살이를 하던 조기장 전영준(왼쪽), 조타수 오용석이 장헌권 목사에게 보낸 편지. 장헌권 목사 제공


미안하다, 억울하다, 미안하다… 아니, 억울하다

'父母千年壽 子孫萬世榮'(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

3월 8일, 붉은 글씨의 부적이 나붙은 낡은 아파트의 철문 앞에 섰다. 부모는 장수를 누리고, 자손은 영화롭길 비는 내용이다. 문을 두드리자 여성이 나왔다. 전영준의 아내였다. 그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남편은 8년 여 전 출소했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이사 갔을 법도 했지만,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아내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부부는 건강을 꽤나 챙기는 것 같았다. 부엌과 벽 한편에는 양파즙과 프로틴 등 건강 제품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당뇨약도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함께 사는 자식이 없는데도 커다란 냉장고와 4인용 식탁을 썼다. 낯선 기자를 혼자 대면하기 어색했는지 친언니와 그의 남편을 불렀다. 세 사람은 출소 후 전영준의 삶을 얘기했다.

전영준의 자택 문에 붙어 있는 부적. 부모의 장수와 자손의 영화를 비는 내용이 담겼다. 부산=전유진 기자

전영준의 자택 문에 붙어 있는 부적. 부모의 장수와 자손의 영화를 비는 내용이 담겼다. 부산=전유진 기자

'미안하다, 억울하다, 미안하다… 아니, 억울하다.'

집으로 돌아온 전영준의 감정의 추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배에 두고 온 아이들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풀릴 길 없는 궁핍한 생활 탓에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다. 다친 허리가 너무 아파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돈이 없었다. 정부는 여객선 침몰의 책임이 있는 선사와 선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했다. 전영준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급을 모아둔 부산은행 계좌 예금도, 고향 마을의 100여 평짜리 밭뙈기도 가압류당했다. 아내가 청소 일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부부가 먹고살 만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술비 1,000만 원은 아들이 어렵게 융통해 왔다. 전영준은 돈만 축낸다는 생각에 가족 볼 낯이 없었다. 객기인 줄 알면서도 할 줄 아는 유일한 업인 뱃일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허리가 버텨줄 리 없었다. 언덕길에서 미끄러져 발목마저 다친 뒤에는 집에서 틀어박혀 지냈다.

그는 또 편지를 써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목사가 아니라 판사가 수신인이었다. 혹시 가압류된 예금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싶어 읍소의 글을 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영준의 아내는 혼잣말하듯 법 집행의 공정함을 따졌다. "그 배에서 오래 일한 누구네는 재산이 다 마누라 이름으로 돼 있어서 하나도 안 뺏겼다던데…"

밤이 제법 깊었는데도 전영준은 집에 오지 않았다. 집 안을 둘러보니 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흔한 가족사진이나 남성의 옷가지도 없었다. 아내를 바라봤다.


우리 아저씨 돌아가셨어요. 급성 췌장암으로. 2년도 더 됐지, 아마. 진단받고 2개월 만에 그랬으니…

아내는 남편을 떠올렸다. 아버지 병간호 하느라 직장까지 그만뒀던 아들 생각도 나는 듯했다. 세월호에 타지 않았더라면, 그때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부질없는 가정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난 저것만 풀리면 좋겠어. 압류돼 있는 거. 저것만 좀 풀어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든 일은 결국 돈으로 끝났다.


법정에 쏟아진 원망, 그리고 그가 나왔다

전영준이 사망한 그해 2월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의 417호 대법정. 판사가 판결문을 다 읽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원망 섞인 고성이 터져 나왔다. 검은 마스크를 쓴 사내가 혼란스러운 법정 안에서 빠져나왔다. 피고인석에 앉았던 전직 해양경찰청장 김석균이었다.
<1회 하(下) 편에서 계속 / 4월 13일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에 공개됩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그날의 책임자들, 저울은 공정했을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sewol/

2021년 2월 15일. 검은 마스크를 쓴 김석균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이현주 기자

2021년 2월 15일. 검은 마스크를 쓴 김석균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이현주 기자




전유진 기자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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