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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우울증은 나약한 징징거림? “징징대면 왜 안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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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우울증은 나약한 징징거림? “징징대면 왜 안 되는데요?”

입력
2024.04.17 11: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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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섭식장애 등 정신질환 당사자로서
에세이 낸 김연지·차열음 작가 인터뷰

8일 차열음(왼쪽)씨와 김연지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우울증과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한 책을 각각 펴냈다. 임은재 인턴기자

8일 차열음(왼쪽)씨와 김연지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우울증과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한 책을 각각 펴냈다. 임은재 인턴기자

김연지(29)씨는 지난해 30만 원을 내고 받은 정신과 검사에서 경미한 알코올 중독, 우울증, 불안장애, 적응장애, 경계선 인격장애 진단을 한꺼번에 받았다. 차열음(가명·25)씨는 14세 때 우울증과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 "164㎝의 키에 58㎏이던 몸무게가 38㎏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2022년 기준 국내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그중 20대 여성이 12만1,534명(12.1%)으로 가장 많았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두 사람은 한국 우울증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우울증은 이들의 삶과 생활을 무너뜨리려 했다. 연지씨는 연이은 자해와 자살 시도로 보호 병동에 입원했고, 열음씨 역시 수면제 50여 알을 입안에 털어 넣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의 경험을 담은 산문집을 최근 냈다. 연지씨의 ‘기대어 버티기’(위즈덤하우스)와 열음씨의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창비). 정신질환을 겪던 시절 누군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읽고 싶었던 마음이 동력이 됐다. 둘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울함을 외면하고 마냥 내버려두지 않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했다.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회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병원서 받은 우울증 진단에 ‘안도’한 까닭은

8일 김연지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에세이 ‘기대어 버티기’를 통해 털어놓은 자신의 우울증과 정신병동 입원 치료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8일 김연지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에세이 ‘기대어 버티기’를 통해 털어놓은 자신의 우울증과 정신병동 입원 치료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열음씨는 중학교 1학년 때 받은 ‘50점짜리 수학 성적표’를 문제의 시작으로 꼽았다. 의사로 일하며 바쁜 부모님에게 딸의 성장을 가늠할 지표는 학교 성적이었고, 열음씨 역시 사랑받으려면 성적이 좋아야 한다고 여겼다. 50점을 받고 나선 ‘성적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랑을 받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예쁘고 날씬한 연예인이 사랑받는 모습을 봤다.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섭식장애의 뿌리에는 미의 추구뿐 아니라 “애정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친구들과 함께 서점 겸 바를 운영하던 연지씨는 불가피한 의견 차이로 마음고생을 했다. 서로 상처 주는 말이 오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출근시간만 되면 심장이 뛰고 일을 하다가 숨이 가빠왔다. 불면증 약의 도움을 받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병원에 갔다가 정밀검사를 받은 그는 "(정신질환) 6관왕을 달성했다.” 열음씨는 어머니에게 이끌려 의사를 만났다.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차열음 지음·창비 발행·164쪽·1만3,000원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차열음 지음·창비 발행·164쪽·1만3,000원

병원에서 ‘병명’을 받아들고는 열음씨와 연지씨 모두 담담했다. "아프면 이해받을 수 있고 이상한 부분도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열음씨의 말이다. 연지씨는 삶은 불안하고 우울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감정이나 기분 때문인 줄 알았던 것이 병이라는 말을 들으니 '이런 고통이 진짜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정신질환은 환자 의지의 문제?

8일 차열음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소년기 나타났던 자신의 거식증 증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열음씨는 신원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직접 제작한 가면을 쓰고 인터뷰를 했다. 임은재 인턴기자

8일 차열음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소년기 나타났던 자신의 거식증 증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열음씨는 신원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직접 제작한 가면을 쓰고 인터뷰를 했다. 임은재 인턴기자

정신질환은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로 치부되곤 한다. 주변의 시선도 그랬고, 두 사람도 진단을 받은 뒤 그렇게 생각했다. 연지씨는 “내가 너무 나약한 것 아닌가”라는, 열음씨는 “나는 왜 내 마음 하나 컨트롤 못 하는 걸까”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연지씨는 “언론이 조명하는, 미라클 모닝(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을 하거나 갓생(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사는 이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자책하게 되더라”고 했다.

20대 여성들의 우울증이 가시화된 이후에도 '나약한 여성들의 징징거림'으로 우울증을 축소하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은 여전하다. 두 사람은 그런 시선이 부당하다고 했다. 연지씨는 “징징댈 만하니까 징징대는 건데, 징징대면 안 되나”라고 반문했다. “월경전증후군(PMS)이나 갱년기 증상처럼, 여성의 정신질환은 역사적으로 납작하게 인식돼왔다”고도 했다. 열음씨는 “아프다는 걸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더 나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움츠러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대어 버티기·김연지 지음·위즈덤하우스 발행·208쪽·1만7,000원

기대어 버티기·김연지 지음·위즈덤하우스 발행·208쪽·1만7,000원

연지씨는 요즘도 ‘제정신 유지비’로 상담비용을 포함해 매달 100만 원을 지출한다. 열음씨도 여전히 정신과 병원을 찾는다. 병을 직면하는 것으로 회복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앞으로도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 한다. 열음씨는 “과거에 비하면 정신질환 당사자의 책이 많이 나왔지만,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지씨는 “서로가 서로를 살리려 애쓰는 사이에서 치유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지씨는 힘주어 말했다.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은어)하지 말고, '기버'합시다. 기대어 버티자는 뜻입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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