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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무력감, 두려움 겪었을 것” 택시기사 분신 사망 ‘산재 인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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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무력감, 두려움 겪었을 것” 택시기사 분신 사망 ‘산재 인정’ 이유

입력
2024.04.17 15: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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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사망 방영환씨 업무상질병판정서
“누적된 절망과 무력감이 극단적 발현”
노동계 “업무상 이유로 극단 선택하면 산재 확인”

지난 2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방영환씨의 노동시민사회장 발인에서 딸 방희원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방영환씨는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택시 완전월급제 전면 시행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지난해 9월 26일 분신해 숨졌다. 뉴스1

지난 2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방영환씨의 노동시민사회장 발인에서 딸 방희원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방영환씨는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택시 완전월급제 전면 시행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지난해 9월 26일 분신해 숨졌다. 뉴스1

“고인의 자해는 업무상 이유로 정상적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근로복지공단이 임금체불에 항의하다 분신한 택시기사 방영환씨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며 내린 판정이다. 직장 내 정서적ㆍ신체적 폭력이 노동자의 삶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 폭력이란 사실을 인정한 대목이다.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위원회)가 이달 8일 작성한 방씨의 업무상질병판정서를 17일 한국일보가 입수해 확인한 결과, 위원회는 고인이 직장(해성운수)에서 폭력적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내몰렸다는 점을 다각적으로 입증했다. 방씨는 해성운수의 저임금·장시간 근로 관행에 개선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가 지난해 9월 분신을 시도해 사망했다. 그해 3월부터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동안 회사 대표 정모씨로부터 여러 차례 폭행·폭언,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위원회는 우선 “고인은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여 사업장과 갈등을 빚다가 2020년 해고됐고 2022년 대법원 판결로 복직했다”며 “복직 이후에도 계속된 퇴사 종용, 부당한 계약서 작성 등에 항의하며 시위하는 과정에서 폭행ㆍ집회방해ㆍ특수협박ㆍ폭언 등이 이뤄진 사실이 확인된다”고 짚었다.

위원회는 이어 “사업주의 폭력적 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장기간의 스트레스는 고인을 긴장, 교감신경계의 만성적 항진에 따른 소진, 급격한 무력감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며 “정서적으로 모욕, 두려움, 고립감에 시달렸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회사가 임금 지급을 거부하며 고인이 생활고를 겪은 점도 언급했다. 위원회는 이런 사정을 근거로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한 절망감과 무력감이 극단적 형태(분신)로 발현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방영환씨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서. 공공운수노조 제공

근로복지공단의 방영환씨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서. 공공운수노조 제공

현행 산업재해보상법은 ‘근로자의 고의적 자해행위에서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다만 ‘업무상 사유로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자해행위를 한 경우, 그 밖에 업무상 사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는 산재로 인정한다. 위원회는 “고인에게 있어서 스트레스 요인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오랜 갈등 상황이 가장 결정적”이라며 “고인의 사망은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결론을 냈다.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 위원을 지낸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고인의 경우 우울증 등의 치료병력이 없음에도 위원회가 자살 이전의 무력감, 좌절감, 절망감과 업무의 관련성을 인정했다"며 “업무상 이유로 정상적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산재’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했다. 정원섭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실장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항의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도 산재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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