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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막고 ‘술집’ 나오는 영화 상영…전주영화제에서 박수와 폭소, 환호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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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막고 ‘술집’ 나오는 영화 상영…전주영화제에서 박수와 폭소, 환호가 쏟아졌다

입력
2024.05.03 19: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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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다큐 '유랑소설' 야외 상영
문화계 명물 '소설' 주인 염기정씨 담아
100명 거리 관객 염씨 마력 빠져들어

지난 2일 밤 전북 전주시 동문길에서 열린 야외 상영회에서 관객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유랑소설'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2일 밤 전북 전주시 동문길에서 열린 야외 상영회에서 관객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유랑소설'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2일 밤 전북 전주시 동문길 2차선 도로 양쪽이 차단됐다. 카페 ‘소설’ 앞 길에 의자들이 놓였다. 건너편 갈비집 주차장에 200인치 스크린이 설치됐다. 도로 위에 의자를 놓아 객석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 보행자들을 위한 통로가 마련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관객은 100명가량. 밤 10시에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다큐멘터리 ‘유랑소설’(감독 이지현)이었다. 지난 1일 개막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

손님 찾아 나선 염기정씨 이야기

영화 '유랑소설' 속 염기정씨가 배우 권해효(왼쪽) 조윤희 부부 등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유랑소설' 속 염기정씨가 배우 권해효(왼쪽) 조윤희 부부 등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유랑소설’은 ‘소설’의 주인장 염기정(64)씨를 화면 중심에 둔다. 20대 시절 음악 그룹 햇빛촌 멤버로 활동했던 염씨는 36년 동안 술집을 운영해 왔다. 1988년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서 개업한 ‘소설’은 인사동과 가회동으로 둥지를 옮겨 다니며 많은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2011)에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는 등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2017년 인사동에서 문을 닫았다가 2021년 전주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영화는 단골들이 나이 들어 술집을 찾기 어려워지자 2022년 손님을 찾아 나선 염씨의 유랑기를 담고 있다. 염씨는 전국을 돌며 임시 술집 ‘유랑소설’을 열고 손님맞이를 한다. 환갑을 넘긴 나이, 돈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뒤늦게 자각하고 아이디어를 내 시작한 사업이다.

야심 차게 새로운 영업에 나섰으나 염씨는 금전 감각이 여전히 무디다. 계산서 내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손님이 주문한 술과 안주의 개수조차 잘 인지하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식재료 원가를 따지지 않는다. “입맛은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수지가 맞을 리 없다. 그럼에도 염씨는 흥에 취하면 기타를 들고 특별 공연을 간혹 한다. 손님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배우 정진영과 김상경, 권해효, 조윤희, 배우 겸 가수 백현진, 이은 명필름 대표, 정홍수 문학평론가, 김영준·최미경 건축가, 유정아 아나운서, 박기용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가수 이민휘, 일본 배우 가세 료, 허진호 감독 등이 영화에 손님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환호와 박수에 '미니 콘서트'로 답례

전북 전주시 카페 '소설'의 주인 염기정씨가 3일 밤 영화 '유랑소설' 상영이 끝난 후 가게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카페 '소설'의 주인 염기정씨가 3일 밤 영화 '유랑소설' 상영이 끝난 후 가게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 속 염씨의 ‘기행’에 폭소를 터트렸다. ‘소설’ 안 손님들은 유리창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염 사장의 유난한 인맥을 자랑하듯 객석에는 문화계 유명 인사가 적지 않았다. 임순례 감독과 허진호 감독, 조성우 영화음악 감독, 백현진, 조선희 작가, 채은석 감독, 유정아 아나운서 등이 눈에 띄었다. 영화 상영 시작 20분쯤 뒤 앞 갈비집 전등이 꺼지자 영화관 분위기가 짙어졌다. 객석 사이 통로로 취객들이 가끔 지나갔으나 괘념하는 관객은 없었다. 51분짜리 다큐멘터리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스크린이 치워지자 염씨는 객석 앞에 섰다. “고맙습니다”라며 짧고 나직한 인사를 했다. 그는 곧 기타를 치며 노래 두 곡을 불렀다. 자기 방식의 답례였다. 탁주 같은 염씨 목소리에 관객은 열광했다. “앙코르” 연호가 이어졌다. 염씨는 “민원 때문에 좀 조용히”라고 말하며 노래 한 곡을 더 했다. 전주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소설’의 손님(또는 관객)들 얼굴엔 온기가 가득했다.

전주=글 사진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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